가는 펜선으로 둘러싸인 골목길

아티스트 강주리의 작업실

한남동 골목길 1층에 자리 잡은 강주리 작가의 작업실은 하얀 벽과 바닥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가늘고 짧은 선들로 촘촘한 드로잉들이 가득했다. 마치 문 바깥 세상의 색면을 차지한 형체들이 모두 사라진듯, 작업실의 붉고 푸른 선들로 이루어진 형체들은 훨씬 가볍고 자유로워 보였다.
강주리 작가
한남동을 자주 오가는 편인데, 이 골목길은 처음 와보네요. 이 곳에서 작업 하신지 얼마나 되셨나요? 이 곳에 작업실을 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남동 생활은 이제 2년에 가까워져 갑니다. 저는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에서 작업을 시작한지 4년정도 되었어요. 2018년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생활 전에는 일년의 반은 미국에서 보냈기에 레지던시 후 그 곳으로 돌아가서 작업을 하다가 전시 기회가 생기면 다시 돌아와야지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런 기회들이 계속 주어졌고 덕분에 작업도 많아져서 공간이 필요해졌어요.
미국 작업실을 정리하고 서울에 자리를 잡자 결심하고 하루 용산구를 둘러보고 바로 계약했던 것 같아요. 위치는 이동이 편리하면서도 조용한 곳! 그러다보니 이곳 한남동 골목길에 자리잡게 되었네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레지던시에 입주해 계셨네요. 레지던시에 입주해서 작업하는 것과 개인 작업실에서 작업하는 것,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천장이 높고 벽 면적이 넓은 작업실은 작업의 크기와 규모를 실험하는 데에 필수적이에요. 레지던시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어요. 또한, 동료들이 함께 하기에 정신적인 지지를 받는 부분도 큽니다.
반면 개인 작업실의 장점은 온전히 저의 공간이라는 것이죠. 1년 또는 그보다 짧은 기간 동안 지내는 레지던시와 달리 장기간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기에 안정감이 있습니다. 도심에 있는 작업실은 재료를 사거나 미팅할 때, 다른 전시를 보러갈 때에 들여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적다는 점도 장점이지요.
작업실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작업하는 시간이 밤낮 대중없고 오랜 시간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저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은 굉장히 중요해요. 동시에 너무 집처럼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환경은 지양하는 편이예요. 양쪽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공간 구조와 배치에 신경을 썼습니다.
 
작업실 선반에 전시 자료나 물건들이 빼곡히 잘 정리되어 있네요. 정리를 잘하고 좋아하시는 편 인가요?
 
멋지게 꾸미진 못하지만 물건이 필요할 때 바로 찾을 수 있게 정리하는 편이에요. 미국에서 일년의 반을 보내고, 이동도 잦은 생활을 몇년간 해왔던 터라 무거운 가구나 기기들을 들이기 보다는, 작업을 위한 최소한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평소 작업실에서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작업실이 크지 않아서 좋아하는 한 공간을 고른다는 것이 조금 민망하네요. 전 작업실 바닥이라고 이야기해야할 것 같아요. 미국 대학원 시절부터 종이를 매체로 사용해서 작은 작업은 책상에서 그리지만 큰 작업은 롤로 말린 종이를 바닥에 펼쳐서 그리곤 했어요. 그래서 카페트가 깔리지 않은 마루 공간을 골라서 이사 다니곤 했어요.
최근 작업 중인 드로잉도 바닥에 롤로 말린 종이를 펼쳐 놓고 진행합니다. 드로잉 외 설치 작업 역시 바닥에 펼쳐 놓고 실험하는 편이에요. 가끔 어머니가 작업실에 방문하시면 이런 제 모습을 보시고선, 온갖 장난감들을 바닥에 펼치고 놀던 어린 시절 모습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세요.
작업실에서 작업하실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으세요?

제 모든 작업의 기본이 되는 종이와 펜이요! 커피, 음악 등은 있으면 더 좋은 것들입니다.
 
평소 생활하실 때 좋아하는 물건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작업실에서 작업 이외에 하는 취미가 책, 영화 정도라 스피커, 프로젝터와 스크린 정도입니다. 또 음식을 제가 만들어 먹는데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그릇에 담아 먹으려 해서 작업실치고는 식기가 많은 편이에요. 한남동으로 작업실을 이사하고 한강에서 자전거 타보려고 구입했는데, 게을러서 타보지 못했네요.

물건을 구매하실 때 가장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시각적으로 예민하다보니 디자인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실용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각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들은 결국 자주 보지 않고 사용하지도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든 물건들을 마음에 꼭 드는 것으로 고르기에는 여건이 허락치 않기 때문에, 가장 심플하게 그 기능만을 수행하는 물건들을 고르기도 합니다.
작품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생존에 필요한 생태 환경의 변화, 생명체의 변이, 진화에 주목하고 있어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펜드로잉과 혼합적인 설치를 통해 우리의 가능성과 존엄성을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작업 속 생명체의 혼성의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요. 의외성이 있는 것들의 복합적인 성향과 양면성이 가지는 가치, 그것을 향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마다 예술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어떤 이에게는 위안을, 어떤 이에게는 각성을, 어떤 이에게는 감동을 주죠. 저에게 예술은 삶과 현실의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에요. 끊임없이 현재와 소통하고,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창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펜을 들면 몇시간 동안 작업을 지속하세요?
 
3시간 정도 작업하고 쉽니다. 쉴 때마다 자주 마시거나 먹어요. 자주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함께 다니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작년 ‘아모레퍼시픽 설화문화전’에서 작가님 작품들이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타 분야 아티스트들과 협업해 보니 어떠셨나요?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건축가, 인테리어, 페브릭, 패션, 영상 디자이너들과 함께 협업한 전시였어요. 저는 주로 혼자 작업을 해왔기에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성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완성도에서 굉장히 만족했어요. 앞으로도 다른 분야의 분들과 다양한 방식으로의 협업 전시를 기대해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작가님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2020년 3월 보스턴 개인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후 8월 뉴욕, 10월 바르셀로나, 12월 일본 일정 역시 온라인 전시로 바뀌면서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생활의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밀린 자료 정리, 웹사이트 업로드 등을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오던 관심있던 다른 영역들에 대한 리서치를 하고 있어요.
 
향후 전시나 활동계획 (작업의 발전 방향 등) 에 대해 간략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펜 드로잉 작업 이외에 소금과 황동으로 생물과 생태를 시각정보와 예술로 환원해온 우리의 문화적 관습에 대한 설치 작업을 준비하고 있어요. 새로운 매체 사용으로 걱정과 설레임 모두를 가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2021년 외국 활동이 가능할 지 아직 미지수이나 가능한 방법으로 계획된 전시는 진행하고자 합니다.
Shin Jihyun
Lee Ju-yeon
강주리
회화, 드로잉, 설치
강주리는 드로잉과 혼합적 설치를 통해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 환경의 변화, 생명체의 변이, 진화에 주목한다. 경기도미술관(2018), 갤러리조선(2018), 주스페인한국문화원(2018), 미국 갤러리NAGA(2017) 개인전 및 아모레퍼시픽 본사(2019), 미국 뉴포트아트뮤지엄(2019),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2018), 미국 피츠버그아트뮤지엄(2018), 대만 타이페이시립미술관(2017), 포스코미술관(2016) 등의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2021 개인전, On Stand in Glass under Cloth, 갤러리 조선, 서울
2020 개인전, Cultivated, Gallery NAGA, 보스턴, 메사추세츠, 미국
2020 단체전, To Survive, 봉산문화센터, 대구
2019 단체전, 설화문화전: Micro-Sense, House of Pattern, 아모레퍼시픽, 서울
2019 단체전, Avant Gardens, Newport Art Museum, 로드아일랜드, 미국
2018 개인전, Twisted Nature,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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