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기록자
청소를 했다.
삐뚤어진 것은 바로 세우고
엉뚱한 곳에 있는 물건은 바른 곳에 놓고
빗질을 했다.
책상 밑에는 지우개 가루, 심이 부러진 연필, 찢어진 종이가 있었다.
무엇을 지웠나
무엇을 그렸던가
쓰레받기에 전부 쓸어 담았다.
한가득하였다.
하나하나 기억이 났다.
무엇을 지웠는지
무엇을 그렸는지
손에 힘을 준 날 망가진 연필들
머리에 힘을 준 날 찢은 종이들.
꽃잎도 있었다.
지난 봄 바람에 날아왔었다.
죽은 벌레도 있었다.
여름에 창문으로 날아왔었다.
쫓아내려고 했지만 천장에 딱 붙어서 꼼짝도 안했다.
잘게 남아 먼지처럼 되어 버린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곱게 깎은 연필과 잘 잘라진 종이 꺼내
그렸다.
쓰레받기에 남아 있는 것들을.
쓰레받기에 남아 있는 것들을 다 그리고 난 후
소용없어 보이지만 진짜 소용있는 것을 그렸다.
그리고 먼지 기록자의 기록법이라고 불렀다.
쓰레받기에 남겨진 것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고이 담고 싶었다.
언제나 꺼내 보고 싶었다.
찾아서 그린 먼지 담을 상자를
각각의 형태에 맞게 만들었다.
먼지기록자의 보관법이라고 불렀다.
차곡차곡 상자가 쌓였다.
반듯하게
청소를 잘 마쳤다.
한나와 토끼